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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D0NNEUR's Roguelike

DEC PDP-11/70 (Front Panel)


로버트 앨런 킨이키(Robert Alan Koeneke)는 1980년 ~ 1981년 오클라호마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 중이던 학생이었다. 당시 기계공학 연구실에는 PDP-11/70 이라는 초기 버전의 유닉스 시스템이 있었는데, 그는 컴퓨터에 소질이 있었기 때문에 매우 자연스럽게 시스템 관리자들과 알고 지내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시스템 관리자들의 초대를 받아 게임을 같이 하게되었는데 하나는 The Colossal Cave Adventure 라는 게임이었고, 다른 하나는 새로운 던전 게임인 로그(Rogue).

The Colossal Cave Adventure


그렇다. 킨이키는 모리아를 제작하기 이전에 로그를 먼저 접하게된게 맞다. 그는 로그를 보는 순간 눈이 번쩍 뜨였다고 회상한다. 로그는 모리아와 모리아의 각종 아류 게임들에게 수많은 사람들이 엄청난 플레이 시간을 쏟게한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한 게임이었던 것.

DEC VAX11/780 in the Atlas Centre, August 1980


그는 로그에 훅 빠져들어서 플레이를 하기 시작했고, 이후 학교에서 다른 컴퓨터 부서의 학생 조교로 첫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VMS 를 운영하는 초기 버젼의 VAX 11/780 시스템이 있는 부서였는데 애석하게도 당시 해당 시스템에는 작동가능한 그 어떤 게임도 없었다고 한다. 더구나 로그를 즐기던 기계공학 연구실에는 컴퓨터(PDP1170)는 오로지 연구를 위해서만 쓰여야한다고 생각하는 관리자가 업무를 담당하게 되면서 더이상 예전처럼 게임을 할 수가 없었고, 로그 또한 할 수 없게된 상황이 발생하였다.


킨이키는 게임을 할 수 없게된 것이 정말 견딜 수 없었고, 그래서 그는 자신의 부서에 있는 시스템에서 돌아가는 로그 게임을 직접 만들기로 결심한다. 이것이 바로 모리아 베타 1.0 버전이 나오게된 직접적인 배경이었다. 자신이 담당하고 있는 VMS 시스템에서 지원하는 프로그래밍 언어는 포트란, 파스칼 그리고 베이직 3 가지. 대부분의 게임은 문자열 조작(string manipulation)이었는데, 그는 모리아 바테 버전에서 처음으로 VMS 베이직으로 프로그래밍을 시도하였다고 한다. 그 결과로 나온 초창기 모리아 베타 버전은 로그와 매우 흡사한 게임이었다. 그러나 그는 모리아가 어떻게 다른 방식으로 작동할 수 있을지, 어떻게 향상시킬지 이런저런 고민을 하기 시작했고, 이후 1년 정도는 게임 개발을 거의 하지 않은채 시간이 흘러갔다.


1983년 즈음에 모리아 태동을 위한 두가지 큰 일이 그에게 발생하였는데 결혼을 하기 위해서 약혼을 하였고, (결혼이라는 절망감에) 오로지 일에만 몰두했다고 한다. 그리고 파스칼 운영체제 수업에 등록한 것. VMS 파스칼 새 버전을 연구하기 시작하였으며 데이터 구조, 최적화, 기본 프로그래밍에 대해서 학창 시절의 몇년 동안보다 더 많은 것을 배웠다고 한다.

Moria DOS Screenshot


1983년 그 해 여름, 킨이키는 VMS 파스칼 기반의 모리아 1.0 버전을 드디어 완성하여 곧 오클라호마 대학 내에서 모리아 게임에 몰두하는 많은 플레이어들을 끌어 모을 수 있었다. 당시 그의 가장 친한 친구 지미 토드는 게임의 훌륭한 조력자였다. 게임을 위해서 더 나은 캐릭터 생성 방법이 무엇인지 곧잘 토드에게 자문을 구하곤 했었고, 그 덕분에 각종 스킬 시스템과 캐릭터 히스토리가 새롭게 탄생하게 되었다. 토드는 게임 내 많은 기능들을 만들 수 있게 도와주었으며 곧 모리아는 2.0 버전으로 업데이트 되었다.


이후 킨이키는 2년 동안은 많은 플레이어로부터 피드백을 받으면서 게임을 향상시키고, 문제점을 수정하는 일들을 계속 진행하였다. 누군가 게임에서 승리하게 되면 그는 발견 즉시 어떻게 승리할 수 있었는지 확인하였고, 게임을 더 어렵게 '향상'시키곤 하였다. 그는 한때 '절대 깰 수 없는 게임'이라고 장담까지도 한 적이 있었지만, 그렇게 말한지 바로 일주일 후에 그의 친구가 바로 게임을 깨버린 적도 있었다. 당시 그 친구의 게임 캐릭터 이름은 Iggy 였는데, 그 사건을 계기로 모리아 게임 속에 'The Evil Iggy' 라는 몬스터로 출현하기도 한다.


1985년 즈음부터는 타 대학으로도 모리아 게임 소스를 보내기 시작하였다. 이와 관련된 일화로는 그해 오클라호마 VS 텍사스 대학 풋볼 경기 직전에 텍사스 대학으로부터 파일을 보내달라고 요청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는 거절하지 않고 흔쾌히 게임을 보내주었다고 한다. 다만 타운 레벨의 거지들을 '오클라호마 풋볼 팬'이라는 이름으로 수정함과 동시에 마을 거지 주제에 게임 내 최대 속도로 향상, 최대 속도로 생성되게끔 만들어 버렸다. 그래서 텍사스 대학에 보낸 모리아 게임을 실행하면 게임에 첫 발을 디디자 마자 마을 거지들이 수천마리로 증식하여 바로 즉사할 수 밖에 없는 코드로 변형해버린 것이다. 물론 그쪽에서 전화가 오자 나중에는 원래대로 바꾸는 방법을 친절히 알려줬다고 밝힌다.


시간이 흘러 1986-87년에 킨이키는 모리아 4.7 을 마지막으로 배포하게 된다. 그는 당시 모리아 5.0 개발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지만 아메리칸 에어라인으로 직장을 옮기면서 대학을 떠나야 했고 모리아 개발 작업에 손을 놓게되었다. 개발 중이던 모리아 5.0은 이전 버전과는 달리 전부 새롭게 쓰여졌다. 물, 계곡, 강, 연못, 수중 몬스터 등과 함께 각종 무기와 보물 등 다양하고 새로운 컨텐츠가 많았다. 그러나 대학을 떠나면서 학교의 조교들이 새로운 모리아를 완성하길 바랬지만 결국 세상에 나오지는 못했다. 아마도 그가 떠난 이후 관리 소홀로 소스가 사라진 것으로 추측된다.


Moria AMIGA Screenshot


이후 킨이키는 게임 개발을 원하는 모두에게 권한을 주기 시작하였다. 몇몇 사람들이 C로 변환해도 되냐고 물어 보았으며 크레딧 히스토리가 유지되면 괜찮다는 조건으로 모두 허용하였다. 한두명의 사람들이 C로 포팅하는데 성공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그중에서도 1987년 버클리 대학의 짐 윌슨에 의해 C/Unix 로 포팅된 버전은 향후 모든 모리아류 게임들의 베이스가 되었다고 한다. 특히 AMIGA용 모리아는 매우 인기가 많았다. 그러나 그의 게임이 직접적으로 상업용으로 팔린 적은 없었다.


출처 : Early history of Moria by Robert Alan Koene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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